[스토리] 플로리다의 비밀 정원, 플라밍고 가든에서 보낸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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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플로리다 글·사진=송미주 기자 mijoo@traveltimes.co.kr

‘플로리다’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어릴 적 봐온 미국 영화 속 그 풍경들. 야자수 아래 수영장, 컨버터블 지붕을 열고 달리는 해안 도로. 본 적도 없는 풍경인데 왠지 익숙하다. 자연스럽게 ‘여름’과 ‘낭만’이 먼저 그려진다. 그리고 왠지 모를 슬픔도 함께.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본 탓인지, 눈부신 색감 뒤에는 늘 그늘 하나가 따라붙는 것 같다. 직접 가본 플로리다는 영화 속 색감 그대로였다. 이곳의 석양빛은 한국에는 없는 오묘함을 품은 플로리다 색이었다.
그 풍경 속에 조용히 자리한 공간이 하나 있다. 포트 로더데일에서 차로 20분, 데이비(Davie)라는 도시 외곽의 플라밍고 가든(Flamingo Gardens)이다. 3,000종이 넘는 식물과 플로리다 최대 규모의 야생동물 보호구역이 공존하는 약 24만㎡, 잠실종합운동장 세 배가 넘는 공간이다. 테마파크도 리조트도 아닌, 그냥 정원이다. 화려하지 않아서 오히려 오래 머물게 되는 곳. 발을 들이는 순간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흐르기 시작한다.
1927년에 시작된 정원

플라밍고 가든의 출발은 192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플로이드 & 제인 레이(Wray) 부부가 약 16만㎡의 땅을 사들여 ‘플라밍고 그로브스’라는 이름의 감귤 농장을 열었다. 전성기엔 지금의 50배가 넘는 땅에 60여 종의 감귤류를 재배하던 대농원이었다. 그런데 부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듬해부터 희귀 열대 과실수와 꽃나무를 하나둘 들이기 시작했고,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전 세계에서 외래 식물과 씨앗을 들여와 컬렉션을 넓혀갔다. 농장이 식물원으로 바뀌는 데는 수십 년이 걸렸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제인 레이 여사는 1969년 이 땅을 비영리재단에 넘겨 영구 보존의 길을 열었다. 지금도 망고 12종, 잭프루트, 코코아 나무가 옛 농원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트램이 달리는 1마일
가든을 제대로 보려면 트램을 타야 한다. 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1마일 코스가 열대 과수원과 사이프러스 습지, 원시 하드우드 해먹을 차례로 지난다. 출발하자마자 보랏빛 리본이 묶인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든이 ‘챔피언 트리’로 지정해 관리하는 개체들이다. 플로리다주 산림청이 종별 최대 크기로 공인한 나무 23그루가 이 정원 안에 있다. 캐노볼 트리, 잭프루트, 코코아, 망고까지 수종도 다양하다.

안쪽으로 걷다 보면 유독 눈길을 붙잡는 안내판이 하나 있다. “WE'RE SAVING THIS TREE.” 수령 90년의 클러스터 무화과(Cluster Fig)에 붙은 안내판이다. 2017년 허리케인 어마(Irma)가 이 나무의 큰 가지 세 개를 꺾어버렸다. 클러스터 무화과는 한번 다치면 스스로 회복하는 힘이 약한 수종이라 부러진 자리에서 부패와 병이 번졌다. 가든 측은 나무 전체를 점검하고 더 이상 상하지 않도록 전지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허리케인 이후 7년째, 이 나무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구조하고, 치료하고, 돌려보낸다


플라밍고 가든은 식물원이기 이전에 야생동물 보호구역이다. 부상을 입거나 야생 복귀가 어렵다고 판단된 90종 이상의 조류와 동물이 이곳에서 살아간다. 악어, 흑곰, 밥캣, 독수리, 수달, 퓨마까지, 플로리다 토착 야생동물을 가장 다양하게 보유한 보호구역이다. 구조·재활·방사, 원칙은 세 가지다. 회복한 개체는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수달 안내판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북미강수달(North American River Otter)은 19~20세기에 모피를 노린 포획으로 플로리다에서 자취를 감췄던 종이다. 서식지 파괴와 수질 오염이 겹치며 개체 수는 급감했고, 지금도 위협은 계속된다. 보호 조치 덕분에 일부 지역에서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다. 그래서 이곳에 있다.
분홍빛 연못과 나비 온실

가든 안쪽, 열대 식물과 폭포로 둘러싸인 연못에 플라밍고 무리가 산다. 아메리칸 플라밍고(American Flamingo·학명 Phoenicopterus ruber), 북미에 자연 서식하는 유일한 플라밍고 종이다. 카리브해와 바하마, 유카탄반도 일대의 얕은 석호와 염호에 주로 사는 이 새가 플로리다에 터를 잡은 건 레이 부부 덕분이다. 짙은 분홍빛 깃털은 타고난 게 아니다. 먹이인 새우와 갑각류에 든 카로티노이드 색소가 몸에 쌓이면서 만들어진다. 먹을수록 더 붉어진다는 얘기다. 연못가에 서면 한참을 그냥 보게 된다.

코스 끝 무렵, 선인장·다육식물 정원을 지나면 나비 온실이다. 플로리다 토착 나비들이 온실 안을 가득 채운다.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어깨나 팔 위에 한 마리가 와 앉는다.
걸음이 느려지는 이유
플라밍고 가든은 비영리로 운영된다. 입장 수익은 동물 보호와 수목 관리에 쓰인다. 망고 수확 시즌이면 정원에서 직접 딴 망고를 선물가게에서 살 수도 있다. 포트 로더데일 공항에서 20분 거리라 마이애미나 올랜도 여행 중 반나절 코스로 넣기에도 부담이 없다.

자극으로 가득한 플로리다 여행 일정 사이에, 이곳은 의도치 않게 속도를 늦추게 만든다. 트램에서 내린 뒤에도 발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출처 : 여행신문(https://www.traveltimes.co.kr/news/articleLi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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