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헌의 관광 시론] 6조 원 해외 골프투어, 남부 지역으로 돌려 지방 소멸 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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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헌 교수 / 영산대 관광컨벤션학과

인간의 기억은 때로 강렬한 촉각으로 남는다. 10년 전 1월, 동료들의 성화에 못 이겨 떠났던 강원도 원주에서의 라운드가 내게는 그렇다. 전날 내린 눈으로 사방이 하얗게 덮인 영하 7도의 혹한 속이었다. 골프장 프런트에서 건네준 것은 뜻밖에도 주황색 볼 4개였다. 페어웨이에 길 두 갈래만 일직선으로 겨우 내놓았으니, 눈 위에 떨어진 공을 무조건 그 길 위로 옮겨서 치라는 황당한 ‘로컬 룰’이 적용되었다. 두꺼운 방한복에 스윙은 둔해졌고, 얼어붙은 그린 위에서 공은 통제 불능이었다. 18홀 내내 눈 속에서 주황색 공을 찾느라 헤매고 나니 몸은 녹초가 되었으며, 연속된 미스샷에 골프의 즐거움은커녕 고통만 가득했다. 라운드 후 식사와 커피값까지 포함해 1인당 15만 원이 넘는 비용을 지불하고 돌아오는 길, 나는 다짐했다. 다시는 겨울에 골프채를 잡지 않겠다고. 아마도 이는 많은 수도권 골퍼가 겨울이면 겪는, 혹은 피하고 싶은 전형적인 고행의 기억일 것이다.
그랬던 내가 최근 부산에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1월임에도 부산은 눈 대신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1월 평균 기온 4~5도, 한낮에는 10도에 육박하는 기온 덕분에 살얼음조차 구경하기 힘들었다. 더 놀라운 것은 비용과 접근성이었다. 예약 사이트의 아침 그린피는 8~9만 원대로 수도권의 절반 수준이었고, 도심에서 골프장까지의 거리도 40km 이내로 부담이 없었다. 여유로운 라운드를 즐기며 문득 깊은 의문이 들었다. 왜 우리는 이토록 훌륭한 국내 남부의 골프 자원을 두고, 매년 수조 원의 외화를 해외로 퍼붓고 있는가. 따뜻한 남부 지역은 겨울철 골프의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음에도, 우리는 왜 이 가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가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경제 지표를 보면 상황은 더욱 엄중하다. 2025년 기준 우리나라의 관광외화 적자 규모는 약 120억 달러로 추산된다. 우리 돈으로 약 17조5,0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특히 이 중 해외골프 관광 관련 지출만 약 6조 원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국가적 자산 유출이자 지방 내수 시장에는 뼈아픈 손실이다. 겨울철 전국의 골퍼들은 추위를 피해 일본,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지로 향한다. 항공료와 숙박비, 현지 체류비를 고려하면 국내 남쪽 지역을 찾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합리적임에도 불구하고, ‘겨울 골프=해외 투어’라는 공식이 고착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국내 골프관광을 내수 활성화의 핵심 수단으로 보지 않고 방관해 온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업계의 소극적인 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인구 소멸의 해법을 ‘골프관광 경제학’에서 찾을 수도 있다. 현재 기초지자체 중 인구 3만 명 이하인 곳이 62개에 달한다. 이들은 재정 자립도 하락과 급격한 인구유출로 존립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만약 이러한 위기지역에 골프 관광이 활성화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수치로 계산해 보자. 지자체 한 곳에 4개의 골프장을 보유했다고 가정하고, 노캐디 운영 등을 통해 가동률을 80%까지 끌어올린다고 치자. 이 중 절반만이라도 수도권 등지에서 온 외지 관광객으로 채워진다면 그 경제적 파급효과는 상당하다. 골프관광객은 단순히 그린피만 지불하지 않는다. 지역 식당을 이용하고, 숙박시설에 머물며, 야간 관광 콘텐츠를 즐기고 지역 특산물을 구매한다. 필자의 추산으로 지역민 소비를 제외한 외부 관광객 유치만으로도, 골프장 4개 규모의 활성화를 통해 해당 지역에 연간 약 3,000억 원의 소비 유발 효과와 1,000여 명의 고용 창출이 가능하다. 62개 소멸 위기 지역 중 일부만이라도 ‘골프특화 지구’로 변모해 체류형 관광모델을 구축한다면, 해외로 빠져나가는 6조 원의 자금은 지방 경제를 살리는 강력한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이제는 정책적 대책이 필요한 때다. 코로나19 특수가 끝나고 국내 골프장들도 운영상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높은 비용과 경직된 운영방식은 골퍼들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를 단순히 개별 기업의 생존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첫째,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 지방 골프장의 이용료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개별소비세 감면 등 과감한 세제지원을 검토해야 한다. 둘째, 연계 패키지 상품 개발이다. 지자체가 주도하여 KTX, 지역 항공, 숙박권과 연계한 ‘연중 남도 골프투어’ 상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셋째, 선택형 서비스의 확대다. 노캐디 라운드 등 이용객의 비용부담을 낮추는 다양한 운영모델을 도입해 문턱을 낮춰야 한다.
골프는 더 이상 일부 계층의 사치 산업이 아니다. 위기에 빠진 지역 내수를 살릴 핵심 관광산업이자 대안이다. 6조 원의 외화낭비를 지켜만 보는 것은 국가적 직무유이다. 따뜻한 남해안과 남부지방의 골프자원을 내수 활성화의 병기로 삼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정부와 지자체,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해외로 향하는 발길’을 ‘지역으로 향하는 발길’로 돌려야 한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지역 경제의 회복은 몇 배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출처 : 여행신문(https://www.traveltimes.co.kr/news/articleLi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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