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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헌의 관광 시론] 누가 꽃을 피우느냐가 아니라, 누가 씨를 뿌리느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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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헌 교수 / 영산대 관광컨벤션학과

                                     김기헌 교수 / 영산대 관광컨벤션학과
                                     김기헌 교수 / 영산대 관광컨벤션학과

관광산업은 흔히 구체적인 숫자로 평가된다. 외래관광객이 몇 명 늘었는지, 관광 수입은 얼마나 증가했는지가 정책성과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관광은 단일 산업이 아니다. 사람과 지역, 문화와 환경, 인력과 서비스가 유기적으로 얽힌 복합 생태계다. 이 복합적인 구조를 단기 성과로만 설명하려는 순간, 관광은 본질에서 멀어지고 사실상 헛발질한 사람들의 성과 자랑만 난무하게 된다.

생태계는 씨를 뿌리는 일에서 시작된다. 토양을 고르고, 뿌리가 자리 잡을 시간을 주며, 보이지 않는 곳에 꾸준히 거름을 주어야 한다. 관광산업도 다르지 않다. 인력 양성, 수용태세 강화, 업계 전반의 지속 가능성, 콘텐츠의 질 관리와 축적은 시간이 걸리고 즉각적인 성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건너뛴 채 성과만 자랑하는 성장은 외형만 화려할 뿐, 생태계의 근본은 무시되고 결국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최근 관광정책은 꽃을 피우는 일에 지나치게 집착해 왔다. 대표 사례가 달성 연도가 오락가락하는 외래관광객 3,000만 명 목표다. 산업의 수용력과 인력구조, 지역 생태계에 대한 충분한 점검 없는 이 숫자는 전략이라기보다 구호에 가깝다. 관광객 수는 늘어나는 반면 1인당 지출액이 900달러 수준으로 하락하고 있는데, 그것을 과연 산업의 질적 성장이라 부를 수 있을까. 숫자는 늘었지만 현장은 더 힘들어지고 붐비기만 하며, 지역은 더 소모되고 종사자들은 더 지쳐간다면 이는 성장이라기보다 착시다.

관광은 양적 확대만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관광객이 늘어날수록 서비스 품질과 인력의 숙련도, 지역 주민과의 공존 구조가 함께 성장해야 한다. 그러나 단기 성과에 쫓기는 정책은 이 균형을 쉽게 무너뜨린다. 사실상 많은 지역에서 이러한 실수는 이미 수없이 반복됐다. 구호는 요란하고 포장은 화려하지만, 그 이면에는 현장의 피로와 갈등만 누적된다. 준비되지 않은 나무에 억지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과대 포장해 자랑하는 모습은 농부가 아니라 장사꾼의 태도에 가깝다. 그래서 관광객이 늘면 지역경제도 업계도 살아야 하는데 실상은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관광산업을 잠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꽃만 피우는 쇼를 하며 공을 독식하는 장면이 너무도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몇 해 머물다 가면서 마치 산업을 일으킨 주역인 양 성과를 포장하고 자랑하는 동안, 수십 년간 현장에서 씨를 뿌리고 토양을 일궈온 이름 없는 종사자들의 노력과 공과 수고는 완전히 지워진다. 이는 단순한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관광 생태계를 무시하는 매우 위험한 행태다.

특히 중앙이나 지방정부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정부는 임기 중 성과를 관리하는 조직이 아니라, 산업의 방향과 토양을 책임지는 주체다. 관광산업은 최소 10년 이상의 시계로 설계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정권이나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목표 숫자와 핵심 사업이 달라지고, 현장은 그때마다 새로운 구호에 맞춰 흔들린다. 사람을 키우고, 지역을 살리고, 산업의 체질을 개선하는 정책은 시간이 걸리지만 필요한 선택이다. 관광산업 생태계는 일부만 잘 자라서는 유지될 수 없다. 대형 사업과 특정 지역만 성장하고, 현장 인력과 중소 업계, 지방 관광지가 소외되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산업은 결국 균열을 일으킨다. 관광은 사람의 산업이며, 지역의 산업이다. 어느 한쪽의 희생 위에 세워진 성과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씨를 뿌리는 일은 늘 조용하다. 당장 박수를 받기 어렵고 성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 수고 위에서만 튼튼한 줄기가 자라고, 해마다 안정적인 꽃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반대로 씨를 뿌리지 않은 채 성과만 재촉하면 산업은 쉽게 지치고, 결국 신뢰를 잃는다.

이제 관광정책은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얼마나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 산업을 어떤 토양 위에 올려놓을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일부 지역에서 당장 성과가 났다고 자랑하지만, 그것은 특정 개인의 공이 아니라 관광이라는 복합산업 속에서 오랜 시간 수고해 온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뒤늦게 시너지를 낸 결과다. 관광의 미래는 눈에 띄는 성과를 낸 사람의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산업의 기반을 다져온 사람들의 손에서 자란다. 농부처럼 기다리고 돌보는 정책과 리더십이 자리 잡을 때, 관광산업은 일시적 유행이 아닌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국가의 자산이 될 것이다.

 

김기헌 교수 / 영산대 관광컨벤션학과


출처 : 여행신문(https://www.traveltimes.co.kr/news/articleLi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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